읽을거리
오늘 우리가 보는 사주는 처음부터 이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보던 것이 태어난 날 중심으로 바뀌는 데 삼백 년이 걸렸습니다.

「사주를 본다」고 할 때 우리는 태어난 해·달·날·시 네 가지를 씁니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이 방식이 자리 잡은 것은 생각보다 늦습니다.
그전에는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봤고, 그마저도 기둥이 셋뿐이었습니다.
이 글은 사주가 어떻게 지금 모양이 되었는지, 그 천 년을 따라가 봅니다.
사주(四柱) 는 「네 개의 기둥」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난 해·달·날·시를 각각 하나의 기둥으로 봅니다.
| 기둥 | 무엇을 나타내나 |
|---|---|
| 년주(年柱) | 태어난 해 |
| 월주(月柱) | 태어난 달 |
| 일주(日柱) | 태어난 날 |
| 시주(時柱) | 태어난 시각 |
기둥 하나는 다시 위아래 두 글자로 이루어집니다.
위를 천간(天干), 아래를 지지(地支) 라 합니다.
그래서 네 기둥에 여덟 글자, 사주팔자(四柱八字) 입니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열 개, 지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개입니다.
이 둘을 짝지어 돌리면 예순 가지가 나오고, 그것이 육십갑자 입니다.
기록으로 남은 첫 사람은 당나라의 이허중(李虛中, 762~813) 입니다.
이 사람이 실존했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愈) 가 그의 묘지명을 써 주었고,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수명과 귀천을 헤아렸는데,
> 맞지 않는 일이 드물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해·달·날 세 가지뿐입니다.
태어난 시각이 없습니다. 기둥이 셋이니 사주가 아니라 삼주(三柱)입니다.
그리고 판단의 중심이 태어난 해였습니다.
무슨 띠에 태어났느냐가 그 사람을 읽는 열쇠였던 셈입니다.
지금도 「띠」로 운세를 보는 방식이 널리 남아 있는 것은 이 오래된 뿌리 때문입니다.

이것을 뒤집은 사람이 서자평(徐子平) 입니다.
오대(五代)에서 북송 사이 사람으로 전해지는데, 생몰년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후대에 붙은 것이라는 견해가 있어, 여기서는 「그렇게 전해진다」고만 적습니다.
다만 그가 남긴 변화는 뚜렷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태어난 시각을 넣었습니다. 기둥이 셋에서 넷이 되었습니다.
둘째, 판단의 중심을 「태어난 해」에서 「태어난 날의 천간」으로 옮겼습니다.
이 둘째가 결정적입니다. 태어난 날의 천간을 일간(日干) 이라 하고,
사주에서는 이것을 그 사람 자신 으로 봅니다.
나머지 일곱 글자는 「나를 둘러싼 것들」이 됩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한 해에 수십만 명입니다.
그러나 날과 시각까지 따지면 갈래가 훨씬 잘게 나뉩니다.
사주가 「띠 운세」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 방식을 그의 이름을 따 자평명리(子平命理) 라 부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보는 사주는 거의 전부 이 갈래입니다.
방식이 정해진 뒤에도, 그것이 책으로 정리되는 데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책 | 때 | 어떤 책인가 |
|---|---|---|
| 연해자평(淵海子平) | 남송~명 | 자평명리를 처음 묶어 정리한 책으로 전해집니다 |
| 삼명통회(三命通會) | 명, 1578 | 만민영(萬民英)이 엮은 백과사전 격. 분량이 방대합니다 |
| 적천수(滴天髓) | 명~청 | 원문은 짧고 함축적이라 주석서가 여럿 나왔습니다 |
| 궁통보감(窮通寶鑑) | 청 | 계절과 기후(조후)를 중심에 둡니다 |
| 자평진전(子平眞詮) | 청, 1776 | 심효첨(沈孝瞻)이 격국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
이 책들은 서로 강조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책은 세력의 균형을 보고, 어떤 책은 계절의 춥고 더움을 봅니다.
그래서 같은 사주를 두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 풀이가 갈립니다.
사주에 「정답 한 가지」가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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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사주가 나라의 공부 과목 이었습니다.
천문·지리·역법을 맡던 관상감(觀象監) 에 명과학(命課學) 이라는 갈래가 있었고,
여기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시험 과목에 위에 적은 책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즉 사주는 저잣거리의 점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동안은 관청에서 배우고 시험 보던 지식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조선 중기의 이지함(李之菡, 1517~1578) 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토정비결(土亭祕訣) 이 널리 퍼졌습니다.
다만 토정비결은 사주와 셈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태어난 해·달·날로 숫자를 만들어 정해진 괘를 찾는 방식이라, 자평명리와는 갈래가 다릅니다.
「토정비결을 봤으니 사주를 봤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나라마다 이름과 결이 조금씩 다릅니다.

| 때 | 무엇이 바뀌었나 |
|---|---|
| 당나라, 이허중 | 해·달·날 세 기둥. 중심은 태어난 해 |
| 오대~북송, 서자평 | 시각을 더해 네 기둥. 중심을 태어난 날로 옮김 |
| 명·청 | 책으로 정리. 다만 강조점이 서로 다름 |
| 조선 | 관상감의 정식 과목. 민간에는 토정비결 |
천 년에 걸쳐 조금씩 모양을 갖춘 셈입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채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쳐 쓰며 다듬어 온 것입니다.
그러니 사주를 볼 때도 **정해진 답을 받아 적는다기보다,
오래 쌓인 눈으로 나를 한 번 비춰 본다**고 여기는 편이 이 내력에 맞습니다.
★ 서자평의 생몰년과 『연해자평』의 정확한 편찬 시기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확실한 것과 전해지는 것을 나누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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